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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메르켈 시대: “메르켈의 합리적 리더십은 독일 정치문화가 됐다”

작성일
2021.09.02
수정일
2021.09.02
작성자
최동민
조회수
425

한겨레S] 인터뷰
헤어프리트 뮝클러 훔볼트대학 교수
새달 16년 집권 끝긍정 평가 75%
중재·협력 능력에 과감함도 겸비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8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도중 손으로 탁자를 짚은 채, 팔짱을 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아래)과 얘기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독일 총선이 다음달 26일로 다가왔다. 집권 16년째를 맞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대도 저물게 됐다. 혼돈의 코로나19 한복판에서 장기집권을 마무리하게 된 메르켈을 독일 국민은 어떻게 평가할까. 지난 5일 독일 공영방송 <아에르데>(ARD)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메르켈 총리 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이 무려 75%에 이른다. 유럽연합(EU) 최강국을 이끌고 장기집권을 끝마치는 시점까지 자국민 열에 일고여덟의 지지를 받는 ‘메르켈 리더십’은 정치인으로서 특별함을 넘어 경이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일 만난 헤어프리트 뮝클러 교수(전 훔볼트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해 “중재와 협력을 갖췄으면서도, 때로 과감하게 결단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메르켈 리더십은 다음 집권자가 따라야 하는 독일 정치 문화로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EU·독일이 원한 위기극복의 리더십


지난 2일 베를린 하일리겐제의 한 식당에서 만난 정치이론가 헤어프리트 뮝클러(70) 전 훔볼트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메르켈 리더십’을 “중재와 협력의 태도를 갖춘 동시에 때로 과감하게 결단하는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유럽연합의 전체 구도를 단순하고 정교하게 도식화해 국가 간 협력과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중요한 성취로 꼽았다.

뮝클러 교수는 마키아벨리 연구자로 이름 높은 정치학자이자, 한때 메르켈 총리에게 독일 정치사를 개인 강의 해준 조력자이기도 하다. 녹색당과 사회민주당(사민당)의 ‘적-녹 연정’(1998~2005) 시절부터 독일 정부에 정치적 조언을 해온 사민당 당원이기도 하다. 그는 “메르켈 리더십은 개인적 성향에서 시작됐지만, 다음 집권자가 따라야 하는 독일 정치 문화로 정착됐다”고 단언했다.

―메르켈 16년 집권 기간을 평가해달라.

1990년 동·서독의 통일 전후 시기에 유럽에선 프랑스와 영국, 서독, 이탈리아 4개국이 비슷한 위상을 가지고 서로 협력했다. 실제 독일은 헬무트 콜(1982~1998년 재임)에 이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1998~2005) 시대까지도 통일 이후 경제 문제와 국내 정치 상황을 해결하는 데 급급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뒤 유럽 헤게모니가 달라졌다. 국제사회에서 군사력이 더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고, 독일은 경제권력으로 부상했다. 그해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그리스 경제가 사실상 독일 손에 달려 있었다. 당시 유럽연합이 해체되지 않은 것을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당시 위기 극복은 결국 메르켈 정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독일 정치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독일 정치에서 메르켈의 공적은 중도우파였던 기독교민주연합(이하 기민련)의 위치를 서서히 왼쪽으로 넓혀 지지층을 확대한 것이다. 독일 정치 지형을 설명하자면, 1998년 ‘적-녹 연립정부’를 구성했던 녹색당과 사민당이 태생부터 연정 파트너였고 좌파였다. 반면 메르켈이 소속된 기민련과 연정 상대였던 자유민주당(자민당)은 중도우파였다. 하지만 메르켈은 전통적으로 사민당이 선점해온 진보 영역까지 점령하면서 기민련 없이 연정이 불가능하게 해놨다. 권력 기술적으로 놀랄 만하다. 메르켈이 지지층 구조를 바꾸지 않았다면, 기민련도 사민당처럼 지지기반 위기가 왔을 때 순식간에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도약 기회를 줬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건 기민련 지지층 구조 변화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극우당의 부상은 전유럽적인 현상이다. 네덜란드, 프랑스 등 독일보다 더 진보적으로 알려진 나라도 극우당이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 게다가 ‘독일을 위한 대안’의 경우, 2015년 난민 위기 이전 독일에서 이미 득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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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6년 집권을 마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탁월한 중재·협력 능력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자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정치력을 인정받았다. 사진은 메르켈 총리가 지난 16년 동안 매년 정례 여름 기자회견 때 연설하던 모습을 묶었다. AP 연합뉴스

기민련의 ‘왼쪽’ 넓혀 지지층 확보

인맥 떠나 협력 중시 리더십 ‘독보적’

이성적 판단과 중재, 그리고 협력



‘메르켈 리더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독일 원전 제로(0)’ 선언, 2015년 난민 위기, 2020년 이후 코로나19 등 여러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며 유럽을 넘어 진가를 인정받았다. 2017년엔 기민련 내부 반대에도 시대 요구를 받아들여 동성 간 결혼 합법화 법안의 자유표결을 허용하는 등 유연성도 발휘했다.


―메르켈 리더십이 유럽연합 전체에 미친 영향도 상당하다.

“각 시대의 특수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시대의 질서’에 맞게 행동하는 정치인이 나타날 때 시대의 특수성이 제대로 작동한다. 지난 10~15년 유럽연합의 확대가 계속됐지만, 서로 다른 정치 문화와 경제 전통을 가진 국가들이 모여 해체위기 없이 작동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 국가 사이에서도, 독일 정치의 연정 파트너 사이에서도 유화적 정치인이 필요했다. 이런 면에서 누구도 메르켈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유럽을 위기에 빠트렸던 도전 때마다 메르켈은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메르켈은 독일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아마도 다음 독일 총리도 메르켈 리더십 형식으로 국가를 이끌 것이다. 메르켈 리더십은 개인적 성격 유형에서 시작했지만, 다음 집권자가 따라야 하는 독일 정치 문화가 됐다.”

―‘세계의 합리적 중재자’로서의 역량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메르켈 리더십은 중재와 협력의 태도로 다른 의견을 충분히, 자세히 듣는 데서 나온다. 물론 독일 정치의 연정 구조 때문에 중재와 협력은 (독일 정치인에게)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에 따라 메르켈은 과감하고, 신속하게, 그리고 외롭게 결단 내리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페어 슈타인브뤼크 재무장관과 독일의 재정이 안전하다고 적극적으로 국민을 안심시켰고, 2015년 8월 밀려들어오는 난민에게 국경을 닫지 않은 결정이 대표적이다.”

―복잡다단한 국가 간 이해관계 조정에도 탁월했다.

“과거 메르켈을 만나 17세기 독일의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에 대해 개인 강의를 해줬다. 이때 메르켈이 강의 내용을 전기회로도 같은 도식으로 단순화했던 것이 인상에 남는다. 낱말 사이에 줄을 긋거나 점을 찍어 생각을 도식화한 것이다. 이런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이 메르켈 리더십의 근간이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유럽연합 국가들과 협상에서 전체 구도를 단순하고 정교하게 조망하는 전제조건이 됐다. 아울러 메르켈이 동독 개신교 목사 가정에서 성장하며 (규율과 도덕성을 중요시하는) 특수한 훈육을 받았다는 면도 영향이 크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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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5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난민 위기와 부채 위기에 시달린 유럽연합을 지도력과 유연함으로 이끌었다”며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메르켈 총리 초상화가 실린 <타임>의 표지. 로이터 연합뉴스

‘포스트 메르켈’ 더 강한 국가로?


메르켈은 1954년 당시 서독지역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갓난아기 때 동독인 브란덴부르크로 이주했다.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통일 직후 정치인으로 나서기 전까지 연구소에서 물리학자로 일했다. 그 뒤 1991년 헬무트 콜 수상의 후원에 힘입어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인맥 정치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현실도 이겨냈다.

“메르켈이 동독 출신 기민련 소속 정치인이라는 것은 인맥으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던 서독 정치인들과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이 때문에 메르켈은 처음부터 합의와 협의에 의존했다.”

―메르켈식 타협 정치에 대한 거부감도 있을 것 같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정치에선 중도 좌파·우파가 대립하며 전선을 이루는 반면, 독일인들은 전통적으로 대립과 갈등을 피하는 편이다. 독일 국민은 교육수준이 비교적 높고, 이성적으로 조율하고 타협하는 메르켈 스타일을 다수가 지지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를 맞으면서 부작용도 있었다. 실제 빠르고 단호한 결정이 필요한 팬데믹 시대에 메르켈의 방식은 비효율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메르켈을 미워하는 집단도 있다. 가령 기후위기 대응에 단호한 개혁이 필요한데, 타협하는 방식을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포스트 메르켈’이 결정되는 이번 총선 흐름도 궁금하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전에 5% 안팎이던 자민당 지지율이 11%까지 올랐다. 코로나 이후 자유가 제한된 젊은이들의 저항 현상으로 보인다. 반면, 코로나가 기민련·사민당·녹색당 지지율 상승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 같다. 팬데믹을 거치며 신자유주의가 종지부를 찍고, 사회복지를 국가가 책임지기 위해 ‘더 강한 국가’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돌아올 수도 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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